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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가는 길이 좀 더 행복해지길
2017년 9월 5일, 수십 명의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채 특수학교 설립을 눈물로 호소하던 모습이 큰 화제가 되어 아직도 많은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들의 눈물 속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2020년 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설립됐다는 소식이다. 이 학교의 설립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이 다시 화제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극장 관객 수 3만3,000명을 기록, ‘흥행작’을 만든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그가 왜 장애 학생 부모들과 5년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인터넷 기사에서 우연히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내용의 단신을 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텐데 딸이 취학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라 그랬는지 “대한민국에 아직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힘든 부모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차 토론회 때는 장애 자녀를 둔 수십 명의 어머님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를 만들게 해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고 담대한 어머님들의 모습을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특수학교 건립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 알 수 없지만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들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주어 고맙다’ 고 하시지만 오히려 어머님들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보는 눈이 생겼고 발달장애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자주 나오는 것처럼 어머님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특수학교 설립에 앞장섰던 어머님들의 경우 자녀들이 대부분 성인입니다. 학교가 설립된다 해도 혜택받을 일이 없는 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언젠가 ‘왜 이렇게까지 애를 쓰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후배 엄마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영화를 보신 어머님들이 “그동안 우리끼리만 투쟁하는 것 같아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돌아보니 김정인 감독이 늘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우리의 행보가 결코 외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갖고 있던 부담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작품을 촬영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원칙이 균형된 시각이었습니다. 단순히 지역이기주의나 님비 때문에 주민들이 학교 건립을 반대했다고 그리지 않았어요. 실제로 영화를 보신 분들이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내가 마을 주민이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각자의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라는 관람평을 남긴 관객도 계십니다. 학교 건립을 반대하셨던 주민들 중에는 아직도 마음을 풀지 않은 분도 계시지만 반기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당시 건립을 반대하셨던 비대위 위원장님도 여러 차례 학교 행사에 참여해 응원을 해주셨어요.
수요에 비해서 특수학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지역의 학생들을 다 태우다 보면 등하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 됩니다. 이른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를 준비해야 하고 피곤한 몸으로 수업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테니 먼 통학 거리가 장애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로 가는 길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절반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센 반대 속에서 수많은 어머님들의 헌신 덕분에 학교가 지어졌지만 이제 겨우 첫 단추를 뀄을 뿐입니다. 여전히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는 곳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카메라가 힘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또 언제든지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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