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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갈동근
댓글 0건 조회 1,067회 작성일 21-11-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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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

호랭이 할아버지의 편지
이은석

‘따르르릉’
학생들이 하교한 텅 빈 교실의 오후, 멍하니 앉아 창밖에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웬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학부모 인가 싶어 황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은석 씨 되시죠?"
"네.. 누구...?"
"혹시 조원태 씨 기억하시나요? 이번에 소천 하셨습니다. 그분이 남긴 편지가 있어 전달해드리고 싶어서요."
아...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억. 대학 시절 뜨거웠던 여름. 5년 전, 그날의 기억을 다시 걷는다.

5년 전, 대학교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혹시 사회에서의 봉사 경험이 임용 면접에 있어 도움이 될까 싶은 얄팍한 이기심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인근 장애인 종합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취업을 희망하는 장애인들이 자립하여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각종 직업훈련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 직업교육에 참가하는 장애인 분들을 서포트 하는 역할이었다.

그저 담당자분들을 도와 강의실을 정리하고, 장애인분들을 안내하고 그런 단순한 역할로만 알고 임했는데, 막상 장애인분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자 할 일이 태산이었다. 여러 작업을 겨우겨우 끝마치고 복지관 복도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을 그때였다.

저 멀리서 위잉-하는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누굴까- 강의는 한참 전에 시작했는데- 거뭇거뭇 한 전동휠체어가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와, ‘키기긱’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멈춰 섰다. 온갖 비닐봉지가 매달린 그 휠체어에는 비스듬하게 걸터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는데, 몸집이 워낙에 육중해 휠체어가 버거워 보일 정도였다. 한여름에도 두툼한 털모자를 눌러쓰고 계셨고, 그 모자의 그늘 밑으로 보인 할아버님의 모습은 참으로.
‘호랑이’
같으셨다. 그것도 산에서 막 내려온 백두산 호랭이. 그 포스에 압도된 나는 말을 더듬으며 여쭤보았다.
"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뭐긴 뭐야, 오라니까 왔지!"
반쯤 쉰 목소리로 벌컥 화부터 내셨다. 난 서늘한 등에 흐르는 진땀을 냉기로 갈음하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성함이..?"
"아니 오라 가라 해놓고 뭐가 이리 복잡해!!"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주민센터 담당자의 착오로 보행운동 불능으로 인한 지체장애를 가진 그에게 잘못된 날짜로 교육 날짜를 통보했다가, 교육 당일이 돼서야 부랴부랴 그에게 복지관으로 와 달라 한 것이었다. 한여름이고 워낙 더운 날씨다 보니 그의 심정도 이해는 하겠다만, ‘호랭이 할아버지’ 그게 그분의 첫인상이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교육장으로 들어섰고, 다행히 한숨을 돌렸다. 잠시 후.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가고자 그분이 나오셨고, 나는 장애인 화장실로 안내를 해드렸다.
몇 분 뒤.
"우당탕탕탕!!!!"
그야말로 엄청난 소리가 복지관에 울려 퍼졌다. 급히 들어가 보았다. 보니 할아버지는 입에 시뻘건 피를 흘린 채 화장실 바닥에 누워- 아니 널브러져 계셨다. 급히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워낙에 거구였던지라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를 간신히 전동 휠체어에 태울 수 있었다. 보아하니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기에 제대로 된 보행이 불가한 할아버님이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보조손잡이를 잡고 일어서 변기로 가시려다 손잡이의 물기에 미끄러져 그만 균형을 잃으시고 바닥에 얼굴을 찧으신 듯했다.

그런데 입의 피가 멈추지 않았다. 보니 이가 부러진 것 같기도, 입술이 찢어진 것 같기도 하였다. 담당 복지사분에게 긴급하게 연락을 드렸고, 지혈이 안 되는 듯하다며 구급차를 타고 인근 응급실로 향했는데, 공교롭게도 교육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교육보조 봉사를 하던 내가 할아버님의 보호자로 동행하여 구급차를 탔다.

다행히 크지 않은 타박상이었다. 당뇨병이 워낙 심했던 터라 혈소판 기능 저하로 지혈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병상에 누워 안정을 취하고 있는 그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할아버님의 보호자가 있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으셨다. 거듭 묻자 이번에는 아예 눈을 감으셨다. 어쩔 수 없이 담당 복지사님에게 연락처를 구해 전화를 드렸다. 아드님이 받았는데 생각보다 차가운 반응이었다. 잠시 후 도착한 그분의 아드님은 걱정보다는 되려, 그러게 왜 그런 시키지도 않은 교육을 받으러 또 가셔서 이런 사단을 만드느냐-라는 타박이었다. 호랭이 할아버님이 연락처를 안 알려준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어찌 됐건 그 다음날에도 호랭이 할아버지는 교육장에 오셨다. 얼굴에는 커다란 붕대를 붙이고. 안 그래도 무서운 그의 모습이 더욱 험상궂어 보이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본인의 아들에게 주눅이 든 어제의 장면이 생생해 연민이 불숙 뛰쳐나왔다. 그래서인지 2주의 교육기간 동안 나는 그분께 일부러 살갑게 굴었다. 안부도 묻고, 날씨도 묻고, 전동휠체어에 주렁주렁 매달린 비닐봉지의 이유도 묻고, 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시다, 손자뻘 되는 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거니 차차 내게 본인의 삶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분은 원래부터 장애인이 아니셨다 했다. 시인을 꿈꾸며 문학을 사랑하고, 인물이 훤칠해 인기가 꽤나 많은 청년이었다고.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건물 3층 높이에서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무릎을 굽히지 않고 땅을 디뎌 다리가 영영 굽혀지지 않았다 했다. 겨우겨우 장애인 연금을 받으며 삶을 연명하긴 했지만, 장성한 자식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다 하였다. 비닐봉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분리수거장의 쓸 만해 보이는 물건들을 담는 용도로 하셨다. 자식들은 그것을 굉장히 못마땅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살림에 보탬이 될 거라 하셨다.

뭔가 마음이 짠했다. 언뜻 그분의 눈물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 그분은 호랭이 할아버님이 아닌 자식의 사랑을 바라는 순둥이 할아버님이셨다. 2주간 교육의 마지막 날. 나는 퍽 친해졌다 여겨진 할아버님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분은 무릎을 못 굽히는 지체장애인이지만, 전동휠체어는 일률적으로 제조되기에 항상 장애가 있는 왼쪽 다리를 공중에 붕 띄우고 다니셔야 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문에 발이 끼기도 하고, 무엇보다 본인이 항상 불편해하셨다.
인근 장애인 보조기구 전문점을 수소문해 전동휠체어에 장착하는 발 거치대를 겨우겨우 구할 수 있었다. 교육 마지막 날, 수료증을 받고 귀가하시려는 할아버님께 다가가 발 받침대를 조립해드렸다.
"할아버지, 이제 발 여기다 올려놓으세요."
굽히지 않는 왼발을 올려놓으셨다. 살짝 몇 번 더 조정을 하니 맞았다. 겉으로는 ‘이딴 걸 뭣 하러 샀냐.’라고 타박하셨지만, 내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이신 듯하였다.
"할아버지, 저도 오늘부터 봉사활동 끝났어요. 저랑 메일 친구 하실래요?"
난 그분께 내 연락처와 이메일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메일은 오지 않았다. 하긴 장애를 가진 그분께 메일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년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임용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되었고, 그분은 어느 순간 점이 되어 잊혀 갔다. 그런데 갑작스레 내게 그분의 아드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아드님은 할아버님이 전동휠체어의 발 받침대를 자랑하며 내 이야기를 엄청 하셨다 했다. 그리곤 틈틈이 컴퓨터로 뭔가를 떠듬떠듬 쓰셨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내게 보낼 이메일이라 하셨다. 그런데 안타깝게 쓰기만 했지, 보내시는 법은 모르셨던 지라, 그저 메일함에 차곡차곡 저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컴퓨터를 정리하다 발견하게 된 것이었고,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분의 메일은 내용이 정말이지 별것이 없었다. ‘잘 지내느냐. 그때 고마웠다. 소식이 궁금하다.’ 이런 내용이 전부였지만, 난 왠지 그 메일들을 보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발인을 마친 후셨기에, 그분의 납골당에 찾아가 보았다. 납골함 곁에 뉜 사각 틀 속 그의 사진은 그날 호랭이 할아버지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가 실은 마음이 따스하고 여린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난 준비한 꽃을 놓고 인사했다. 자신의 장애로 삶이 피폐해져가는 가족들 앞에서 늘 본인이 죄인이란 생각으로 주눅 들었을 그를 생각하니, 한때는 시인을 꿈꿨던 문학 소년이 언제든 우리 가족이 겪을 수도 있을 불의의 사고로 어두운 그늘 속에 숨어버린 그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 아닌, 내 가족이 겪을 일을 먼저 겪는 ‘이웃’이라는 말이 있다. 그날 이후로 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장애인분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결단코 연민이나 동정심 따윈 없었다. 오히려 저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거나 가족일 거란 생각에 반가움이 앞선다. 내 주변, 내 삶 속에 잠시나마 할아버지가 계셨듯, 공기처럼 흐르는 물처럼 일상 속 장애인들을 볼 수 있고 저마다의 날개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모자를 눌러쓰고 왼발을 쳐든 호랭이 할아버지가 덜덜덜 거리며 전동 휠체어를 타곤 내게 다가올 것만 같다. 그럼 난 아무렇지 않은 듯 할아버지의 저릿한 손발을 주물러드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요즘엔 시도 쓰고 계시고요? 그곳에선 눈부셨던 그날처럼 다시 걷고 뛰시며, 화창한 봄을 만끽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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